서예지의 정체성
서예를 하다 보면 이렇게 자투리가 남곤 한다. 버릴까? 그럴 순 없다. 작은 것을 사랑하는 나인데. 이 화선지는 나무 펄프에서 나왔다. 그 나무는 화선지로 재탄생하면서 어떤 꿈을 꾸었을까? 자신의 몸 위에 두보와 왕유가 거닐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어느 늙어가는 서예인이 자기 몸 위에서 마침내 득력을 하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아니, 뭐 그 정도 거창한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소박함과 지극함을 버무려 마지막 종이 몸을 불사르고 싶었을 것 같다. 이렇게. 그리고 때로 그 써버린 종이는 또 다른 기회를 갖기도 한다. 고기 구울 때 기름 받이로 서예지는 사랑받는다. 이처럼 애틋하고 맛나게 사랑받는 화선지 또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마당의 화로에 점화용 종이로 생을 마감하는 서예지도 있다. 그래! 알차고 뜨..
붓글씨, 붓그림
2021. 3. 5. 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