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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재 윤두서-조선의 위대한 화인

붓글씨, 붓그림

by 타타오(tatao) 2020. 10. 6.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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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畵人)이 있었다.

그 이름은 윤두서, 호는 공재

현재 심사정, 겸재 정선과 함께 삼재라 불리고 있다. 

윤선도의 증손이다. 어쩌면 윤선도가 자기 손자의 후예로 태어나길 원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그림에 있어서 압권이며 백미(白眉)이다.

그의 외증손자가 정약전과 정약용이다. 그야말로 문예의 금수저라 할만한 가문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잡된 맛이 1도 없다. 청고함 그 자체! 그는 서화만 능한 게 아니라 유학, 천문 지리, 수학, 병법에도 달통했었다고 한다.

이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지 그림만 그리는 화공과의 차이가 바로 넓고 깊은 학문인 것이다. 그 것은 그림 속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의 그림을 보면 느껴지는 것은 고요함이며 탈속이다.

유하백마도

남겨진 그림은 많지 않아 아쉽지만 전해지는 작품 하나하나가 걸출한 풍격으로 진동하고 있다.

이 백마는 버드나무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 백마의 등을 버드나무가 쓸어주며 무슨 말을 건네는 것일까? 백마는 좋아서 발을 들썩이며 응앙응앙 거리고 있는 것 같다.

공재는 이미 버드나무며 백마이고 그들 사이를 불어주는 바람결이리라.

나물 케는 여인들

 

 

 

 

 

나물 캐는 여인들을 보면 움직임이 생동하고 있으나 그 움직임 속은 역시 부동심이다.

나물을 캐는 마음속에 어떤 가식도 있을 수 없다. 그저 사무사의 상태일 뿐이다. 어쩌면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밀레는 초기에 방황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웅장한 내적 바탕이 잇어야 가능한데 공재의 품은 크고도 넓다.

무엇도 그의 고요를 흔들 수 없을 것만 같다.

우뚝 솟아 부동인 산-그리고 장면 밖으로 날아가버린 새의 경지랄까?

 

 

부동심이란...

형상에 미혹되지 않음을 이른다. 형상을 넘어서면 형상 가지고 옳고 그름을 논하지 않게 된다.

 

 

짚신을 만드는 이 노인은 삶이 어떠할까? 밥은 챙겨 드실 수 있으려나?

아니다. 그건 이미 형상에 끄달린 것, 여기서 저 모델은 이미 윤두서 자신이다.

자기 그라운드로 초빙하여 그려진 저 그림은 객체가 아닌 주체인 것이다.

이제 그의 유명한 자화상을 보자.

오래되어 입었던 관복은 보이지도 않는다. 현미경으로 보니 귀도 그렸었는데 희미한 흔적으로만 남아있다.

눈과 터럭을 보라!

이 작품이 동양 최고의 자화상이라는 평을 듣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염 한 올 한 올이 이렇게 살아있다니!

마치 그림 속에 누가 들어가 빗으로 수염을 가다듬어 드린 것만 같다. 잘 보면 한 올도 엇갈리거나 뒤섞여 있지 않다.

그리고 눈을 둘러싼 은은한 주름과 음영 또한 대단한 표현력이다. 서양의 해부학적 안목을 이미 장착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군말 말고 그 자화상을 그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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