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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禮)와 의(義) -그 속내를 알아보자

문자인문학(문자의 뿌리, 어원)

by 타타오(tatao) 2020. 7. 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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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禮)와 의(義)

동양의 철학은 이 두 글자를 벗어나지 않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인문학 역시 이 두 문자의 드넓은 그늘 아래 있다.

그러면 이 두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텐데 이상 세계는 왜 이뤄지지 않고 있을까?

사실은 제대로 아는 사람이 5%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대에 이르면서 너무 마음이 바빠지고 상대적으로 시간은 줄어진 것일까?

문자 하나를 앎에도  스윽 지나가는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이 대부분이다.

고사성어는 지혜가 오래도록 숙성된 황금빛 뼈- 

깊이 우릴 때 그 진액이 나온다. 어렵다는 뜻이 아니다. 그 뿌리를 살피자는 것이며 그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예(禮)는 제사상(示보일 시, 제단 시)에 제기(豆 제기 두, 콩 두)를 놓고 수확한 콩을 수북이 담아둔(豊) 상태다.

즉 얻은  바에 감사함이 예다. 

많든 적든 받는 월급과 일당에 감사하고 일이 주어졌음에 감사하고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고 많은 남이 내게 주어졌음을 감사함이 예다. 몰라서 례를 아니하면 비례(非禮)라 하고 알고도 아니하면 무례(無禮)라 한다.

 

 

감사할 타이밍을 놓치지 않음이 예절(禮節)이다. 감사를 표현하는 행동을 예의(禮儀)라 한다.(예도 예, 거동 의)

당신은 무엇에 감사하려는가?

아침에 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다시 의식이 찾아와줌을 감사할 수 있는가?

눈을 뜨니 다시 빛이 맺힘을 , 움직여짐을, 그리고 밤새 나를 보듬어주었던 잠자리를 감사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내 곁에 잠들어 있는 아이들...심지어 이미 깨어 무언가 마련하고 있는 여인에게 감사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예를 아는 사람이다. 공자는 예禮를 선양한 분이었고 당신 역시 예인일 수 있다.

감사는 사랑과 함께 우리 인간의 가장 밝은 파장대며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삶에 찌들려 마음이 작아지니 감사의 타이밍도 놓치곤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감사를 지각하는 섬모들이 퇴화되기도 한다. 그것을 감사력의 근손실, 감사의 치매상태라고 한다.

사람들의 의식이 이러함을 본 맹자는 예(禮)를 잠시 내려놓고 의(義)를 주창했다.

옳을 의-義는 羊(양 양, 좋을 양) 아래 我(나 아, 지킬 아) 즉 나의 밝은 면을 지킴이다.

제발 어두움에 침몰하지 말고, 동물처럼 반응만 하지 말고, 좋고 착하고 밝은 본연의 빛을 지키라는 것이 의(義)다.

그런데 의는 약간의 무력이 포함되어 있다.

세상에서 의가 달린 단어나 문장들을 보자. 의리(義理), 정의(正義), 의혈단,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 정의의 칼을 받아랏!  으~리! 등등...

의(義)의 이름으로 무력이나 살륙도 감행되곤 했기에 의에는 이치 리(理)가 따라붙는다. 의라 할지라도 이치에 맞게 행하라는 뜻이다. 인(仁)이나 예(禮)는 그 자체로 순수한 의식대이니 리(理)를 붙이지 않아도 되나 의는 자칫 거칠 수 있기에 의리여야 한다. 그러면 리(理)는 뭘까?

구슬 옥(玉)에 里(마을 리, 속 리) 구슬을 꿰는 뜻. 즉 나에게만 통하는게 아니라 상대에게도 주변에도 통하는 게 리(理)다.

조화로움이 리다. 그게 리(理)의 진리이니 도리(道理)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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