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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과 물감은 완전히 다르다. 혼을 갈아 넣는 먹 갈기

붓글씨, 붓그림

by 타타오(tatao) 2020. 12. 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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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사우(文房四友) 중 하나인 먹-

이 검고 단단한 물체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지 오늘 얘기해보려 합니다.

l  최초의 먹

벼루에 물을 붓고 시커먼 고체인 먹을 갈아 먹물을 만든다. 그 먹물을 붓에 적셔 글씨를 쓴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라 여겨지지만 이런 시도가 있기 이전, 즉 최초의 먹을 만든 누군가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종이는 채륜, 붓은 몽념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먹은 최초의 개발자가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춘추전국시대에도 먹을 쓴 기록이 남아있어요. 아마도 종이가 생기기 전에 먹은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나무나 죽간에 먹으로 써진 글씨를 보면 알 수 있죠.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시대의 모두루 묘지에서 벽면에 쓰여진 묵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l  먹 만드는 과정

과거의 먹은 갑골문의 주서, 은대의 석묵, 묵즙, 주액, 칠묵 등이 있었으나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먹은 송연묵과 유연묵입니다.

송연묵은 소나무 그을음이 주 원료이고, 유연묵은 기름의 그을음을 이용해 만들지요.

먹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마에서 열 하루 동안 불을 때는데 이때 거친 그을음은 터널을 지나다가 떨어지게 되고, 정밀하고 미세한 그을음만이 가마 끝까지 이동한다고 합니다. 꼭 사람의 심성과도 비슷하죠?

잘 긁어모은 그을음에 아교를 섞어 뭉쳐주고 3만번 이상을 치대 잘 반죽해 줍니다. 그 다음 틀에 넣어 모양을 만들고 기포를 빼 주면 말랑말랑한 먹이 만들어지지요. 이것을 자연풍에 한달에서 3개월정도 건조를 해주면 되는데 아교가 여름엔 빨리 쉬고, 겨울엔 굳질 않아서 참 쉽지 않은 작업이랍니다. 이런 수고를 해주시는 묵공님들께 이 영상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l  좋은 먹은 어떤 먹일까?

먹을 눈으로 보고 그 품질을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주로 디자인이 유려한 것이 상품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품질인 먹에 화려한 옷을 입히는 일은 아무래도 드물겠죠. 그래서 단순하게 고가인 먹을 고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좋은 먹은 짙은 검정색에 광택이 나고 맑은 빛을 띕니다.

먹이 준비됐다면 제대로 된 판단은 먹을 갈 때부터 시작되지요.

좋은 먹은 물과 만났을 때 은은한 향기가 퍼져 나가며 자연스럽게 잘 갈리는 느낌이 납니다. 잘 갈리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 소리- 들리시나요?

질이 나쁜 먹은 잘 갈리지 않을뿐더러 부스러기가 남는 경우가 많아서 붓이 잘 안 나갑니다. 먹이 하품일수록 진흙탕에 빠진 말처럼 달리질 못하죠. 이런 먹물은 다 쓰고 나서도 딱딱하게 굳어서 붓의 생명을 단축시킵니다. 반대로 쓸 때 미세하고 정밀한 획질이 느껴지는 게 상품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l  먹을 가는 법

먹 가는 법을 말씀드리려 하니 감회가 무쌍합니다. 제가 이 채널에서 최초로 올린 영상이 바로 먹 가는 법이었거든요. 대략 천일이 지난 지금 더욱 진화한 방식으로 영상을 만들었으니 끝까지 봐주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먹물이 잘 나오기 때문에 굳이 시간 들여 먹을 가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찍어 쓰는 경우도 많지요. 그렇다면 시중에 파는 먹물과 직접 갈아 쓰는 경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선 파는 먹물은 당장 쓸 수 있기 때문에 시간 절약면에서는 좋지만 카본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붓에 화학 먹물이 묻은 상태로 붓이 굳으면 거의 쓸 수 없게 되지요.

반면에 갈아 쓰는 먹은 더 정밀하게 갈려서 붓질이 자연스럽습니다. 부드럽게 잘 써지는 만큼 붓의 수명도 길어지겠지요?

그래서 먹물을 사용하더라도 물과 섞어 조금이라도 가는 것을 권장합니다.

먹을 갈기 위한 물은 맑은 물이어야 합니다. 더운 물이나 너무 찬 물이나, 불순물이 섞인 물은 권하지 않습니다. 더운 물로 갈면 입자가 부어서 팅팅해지고요, 너무 찬 물을 쓰면 먹의 광택이 살아나질 않거든요.

옛날에 어느 스승이 제자에게 먹을 갈 물을 길러 오라고 했습니다. 제자가 그 물을 어디서 가져오냐고 묻자 보름달이 비친 물을 받아 오거라.” 하였다는 말이 있지요. 참 아름답지 않나요?

만월이 청청하게 비쳐 일렁이던 물을 고이 받아오면 그 안에 달빛이 실릴까요? 아마도 그런 모양입니다. 오랜 세월 글을 쓰다 보니 이런 비유 하나하나가 참 소중하고 절절하게 와닿더라구요.

맑은 물을 벼루에 받았으면 먹을 가볍게 쥐고 한 방향으로 돌려주면 되는데, 이 때 먹은 무겁게 눌러서 가볍게 돌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딱해딱 급하게 가는 것은 안되겠지요. 먹을 갈다 보면 먹이 비뚤게 갈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면 뒤집어서 반대로 갈아주며 균형을 맞추면 됩니다. 이렇게 둥글게 가는 것이 정도이지만 직선으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벼루에 붙은 먹찌꺼기를 벗겨내는 역할도 하지요.

 

l  먹을 갈 때의 심법

저는 처음 서예학원에 다닐 때부터 이 먹을 가는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하루의 스트레스와 번뇌가 다 털어지고 비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달까요? 그래서 제가 사람들을 가르칠 때에도 이 과정을 찬찬히 느껴 보길 권하곤 합니다. 가볍게는 먹을 가는 동안에 오늘 쓸 문장들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하루 일상을 되감아 볼 수도 있겠죠? 어쩌면 잊었던 나 자신을 직면하는 시간이 될지도 모릅니다. 벼루를 내 마음바탕으로 놓고 잔잔한 호수를 대하듯 부드럽게 먹을 돌려 갈아내는 것- 얼마나 반짝이는 시간일까요? 이 과정을 진중하고 깊이 있게 들어간다면 서예의 질 또한 틀림없이 고양될 것입니다.

 

l  먹은 얼마나 갈아야 할까?

먹을 가는 시간은 양에 따라 다르고, 먹과 물의 비율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먹물과 물을 섞어서 쓰는 경우에 비율은 1:1 정도면 무난할 거에요.

가는 시간은 10분이 될 수도, 30분이 될 수도 있겠지요.

먹을 가는 중간중간 먹물의 진하고 흐림, 즉 농담을 보면서 감을 익히는 게 좋습니다.

송나라 시대 서예가인 소동파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하네요.

어린애 눈동자 빛이 나도록 갈아라.”

이 말은 흐려서 번지지 않고, 진해서 탁해지지 않게 적절한 농담을 찾으라는 의미였겠지요.

먹물의 농담은 쓰려는 서체에 따라서도 조금 다른데 행서나 초서, 한글 흘림체처럼 빠르게 쓰는

서체는 먹이 조금 흐려도 무방합니다. 뻑뻑해서 붓이 쉽게 안 나가고 갈라지는 것 보다는 부드럽게 나가는 정도가 좋겠지요.

해서나 궁서체 같은 경우는 조금 진중하게 쓰는 쪽이라 진한 먹물이 타당합니다. 나머지 전서나 예서, 판본체는 그 중간 정도로 농담을 조절하면 되겠습니다.

 

l  먹빛 속에 오색(五色)이 있다.

먹빛 속에 오색이 있대, 정말이래

검은 먹빛 속에 오색이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이것은 일종의 비유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오색은 색깔이라기 보다는 오행이자 오방색을 의미합니다. 모든 색이 하나로 모아져 검은 빛을 이루었다는 말이죠.

먹은 나무를 태운 그을음에서 온 것이니 목()기운이 주를 이룹니다.

또한 열흘간 엄청난 화()기운을 가마 속에서 받았습니다. 그냥 나무가 아니라 용이 된 나무죠.

이것을 묵룡이라 합니다.

먹과 단짝인 벼루는 어떨까요? 단단하고 무거우며 갈아내는 봉망이 있으니 금()기운을 머금었으

나 본래는 돌이었기 때문에 토()기운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목과 금은 상극입니다. 그 둘 사이를 맺어줄 중간자, ()기운이 반드시 필요하지요.

물이 없이 먹과 벼루만으론 먹물을 갈 수 없듯이요.

이렇게 먹과 벼루가 물과 만나 먹물이 되는 과정 자체에 목화토금수라는 오행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행이 구비되었다는 것은 생명이 될 준비를 마쳤다는 의미가 되지요. 이제 붓이 다가와 희고 소박한 화선지 위에 뼈와 근육과 살과 피가 감도는 생명을 출산하기 시작할 겁니다.

 

l  먹 관리 법

다 쓴 먹에는 물기가 없는 것이 좋습니다. 표면에 뭍은 물기는 다 쓴 종이로 닦아서 보관합니다.

벼루에 먹물이 남았다면? 웬만하면 그날 쓸 만큼만 준비하고 다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만, 남았다면 물을 살짝 부어 놓고 벼루 뚜껑을 덮어 놓습니다.

그런데 내일도 쓸 기약이 없다면 깨끗이 없애 주는 것이 도리입니다.

먹물이 하루 이상 지난 것을 숙묵(宿墨)이라고 하는데, 오래 묵으면 걸쭉해집니다.

결국은 상하고 냄새가 날 수도 있지요. 먹을 닦고 벼루를 닦는 것 역시 내 마음을 닦는 것이며 저 광활한 우주를 닦는 것입니다.

문방사우(文房四友), 내 소중한 친구들이자 보물인 문방사보(文房四寶)를 그 이름에 걸맞게 대접하고, 아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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