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애드센스광고 구글애널리틱스등록 애드센스 블로그등록- 연필-아날로그의 갬성을 안아주다-곽도원 [네이버사이트소유권확인]

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연필-아날로그의 갬성을 안아주다-곽도원

붓글씨, 붓그림

by 타타오(tatao) 2020. 8. 10. 13:53

본문

당신에게 연필은 무엇인가요?

저는 표현할 게 있으면 말을 하죠. 그리고

깊이 새기고 싶을 때는 연필을 듭니다. 

 

저는 말을 시작하기 전부터 연필과 사랑에 빠졌죠. 연필로 뭐든 그렸습니다. 사람도 권투 글러브도 칼도 총도.

사람들의 얼굴-분노와 기쁨과 두려움과 사랑을 담은 온갖 표정도.

여섯 살 때는 고향의 어느 할아버지께서 제 이순신 장군 그림을 9원 주시고 사주셨죠. 연필은 내게 최초로 돈을 가져다준 친구입니다. 썩 괜찮죠?

중학교 때는 제 연필은 공책이며 책의 빈 공간을 미친듯이 날아다녔습니다. 반 급우들에게 예쁜 여자를 그려주면 인기가 천장을 치고 올라갔죠.

4B연필을 통해 미술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연필은 내게 그림이었고 글씨였습니다. 문자였고 형상이었으며 고운 추억이고 사랑이 오고 간 편지였으며 나를 먹여 살린 내 인생의 친구입니다. 그 연필은 자기 매력적인 친구들도 내게 소개해줬죠.

펜이 있었고 붓이 있었습니다. 제가 연필을 오래도록 잊고 펜을 끼고 다닐 적에도 연필은 아무 투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붓과 사랑에 빠져 몇십년을 동거할 적에도 연필은 필통 속에서, 연필꽂이 속에서 날 바라볼 뿐이었죠.

어느 날 난 연필꽂이의 연필과 눈이 마주쳐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타타오: 잘 지내? 거기... 답답하지?

연필: 괜찮아요. 다 제 탓이죠. 

타타오: 그래. 그건 맞는 말이야. 넌 펜보다도 흐릿하고 굵기도 일정치 않아서 그나마의 자리마저 샤프에게 뺏긴지 오래지. 현대는 가늘고 선명해야 살아남아.

연필: 그렇다고 제가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펜을 따라갈 수는 없잖아요?

타타오: 그렇겠지. 

연필: 오늘... 저를 한 번 안아주실래요?

타타오: 아... 왜 그래? 난감하게. 안아서 뭐... 누구한테 편지라도 쓰라고?

연필이 뭔가를 쓰이길 바라는 듯하여 난 그릴 거리를 찾아 검색을 했습니다. 핀터레스트를 들어갔다가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영화의 배우 한 사람이 떠 있네요.  아! 곽도원!

그의 사진들 뒤로 그가 펼쳤던 진하디 진한 연기의 장면들이 오버랩되었습니다. 난 그렇게 자기만의 연기를 가진 배우를 사랑합니다.

내가 연필을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죠.

그렇게 정말 오랜만에 연필로 작품이 나왔습니다.

곁에서 붓이 쭈뼛거리며 나오더니 연필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머리카락과 옷깃 마무리를 돕네요.

콜롬비아 수프리모 커피가 식었지만 더욱 깊은 맛이 느껴졌습니다.

그랬다. 연필은 한 선으로는 선명하지 못했지만 자꾸 덧입혀서 얻어지는 그 깊이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늙어도 그런 맛을 낼 수 있겠구나-싶습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